Login Logout Link+ Admin Write

복사꽃의 꽃말은 / 히요리츠즈키

BGM : 쏜애플 - 행복한 나를

 

  주홍빛 하늘이 어른거리던 밤, 남자는 눈을 감지 못하고 물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연기가 자욱한 방 안에는 이미 그가 비운 술병이 몇 병이고 동 난 채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문고리를 잡고 두어번 내리쳐 인기척을 알린 아이가 문을 열다가 한참이고 기침을 콜록댔다. 그 모습에 남자가 피고 있던 물담배를 빼어 저 멀리다 치워두었다. 방으로 기어들어 와 빈 술병을 정리하던 아이가 샐쭉이 남자를 돌아보다가 말했다.

 

"어머니가 술 그만 마시래요."

"왜? 술이 다 떨어졌다 그러십니까?"

"아뇨. 시체 치우기 싫다고."

 

  실없는 걱정에 남자가 웃었다. 하기는 이곳에 머문 지 벌써 닷새 째기는 했다. 첫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셨으니 슬슬 주인이 걱정이든 의심이든 할 때가 되었다. 돌아가기는 가야 하는데 길가다 마주칠까 두려워 방랑한 지 벌써 두 해를 넘겼다. 술병을 치우다 말고 아이가 물었다. 나리. 왜 그렇게 술을 드세요? 

 

"잊고 싶지 않은 일이 있어서요."

"거짓말. 다른 어른들은 술만 마시면 맨날 지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홀랑 까먹던걸요."

"사람마다 약의 효능이 다르듯 술의 효능도 다르거든요."

 

  아이는 그 말에 혹해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다 뭐가 그렇게 잊고 싶지 않느냐며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어 내리다가 말했다. 사랑이요, 하고.

  남자, 히요리츠즈키는 매일 노력하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같은 마음일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사랑하게 되는 기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고들 하니까. 그래도 히요리는 일말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저를 미워하지는 않으니까, 생전 모르는 남보다는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한없이 따뜻하기만 한 그 눈동자의 온도도 변하게 될 거라고. 필요한 건 그저, 아주 사소한 계기와 조금의 시간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히요리는 감히 자신했다. 선라향에서 돌아와 부쩍 어른이 된 자신을 보게 된다면 사쿠라기도 저를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아주 순진한 믿음이었다. 집에 돌아온 첫날, 사쿠라기는 히요리에게 약혼자가 생겨 곧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선을 보았고 상대가 마음에 들어 분가하게 될 것 같다며 아기씨가 이렇게 잘 자라주어서 다행이란 말까지 덧붙였다. 저주를 이겨내고 이리도 건강히 자라주었으니, 이젠 걱정 없이 집을 떠날 수 있겠다고 웃는 사쿠라기가 히요리는 너무도 낯설었다. 

 

  처음엔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사쿠라기가 그를 떠날 리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약혼이라니, 그 어떤 낌새도 없었다. 왜 아무 말 안 했어? 히요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사쿠라기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마치 그런 질문을 받을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 얼굴에서 히요리는 사쿠라기와 그의 마음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녀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그의 마음을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망설였을 것이다. 히요리의 얼굴이 울음으로 일그러졌다.

 

  자아가 있을 때부터 늘 곁에 있었다. 집을 떠나 여행을 다니겠다고 막연히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 여행조차 사쿠라기와 다닐 셈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도 이 집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쿠라기에게 말로만 들었던 세상을 함께 구경하고 또 거닐고 싶었다. 자신에겐 왜 기회조차 주지 않는지.

 

  어떻게, 자신이 없던 그 짧은 사이에, 사랑을.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면 왜 자신이 아닌지 히요리는 사쿠라기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 사람과의 시간보다 몇 배는 더 긴 시간동안 그녀를 사랑해왔다고 절규하기도 했다. 방 안의 가구들이 온통 부서졌다. 소란에 사람들이 히요리를 말리러 왔지만, 히요리의 가슴께에서 뻗어 나온 덩굴과 꽃이 방어하고 있었기에 침범하지 못 했다. 코 끝이 찡할 만큼 지독한 복숭아 향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한 때, 사쿠라기와 함께 있던 이 좁은 방 안이 히요리의 세계였던 적이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가지 마.'

 

  히요리가 사쿠라기에게 무릎 꿇었다. 

 

'예뻐해 줘.'

 

  애원했다.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노력 할 게.'

 

  그러나 세상에는 분명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존재하기에.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0) 2021.05.01
.  (0) 2021.05.01
初恋 / 히요리츠즈키  (0) 2021.05.01
金魚花火 / 히요리츠즈키  (0) 2021.05.01
Our last summer / 에드워드 젠킨슨  (0) 202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