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가 무엇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서인지, 사월의 눈송이가 만개하던 날에 벚나무 아래에 서서 저를 보며 웃어주던 얼굴이 좋아서인지. 그러다 한 순간에 흰 빛으로 물들어버린 머리카락과 함께 흩날리는 봄눈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워서인지……. 꿈의 시작이 늘 그렇듯 첫사랑의 시작도 으레 모호한 법이다. 조롱 속에 갇힌 새는 제 곁에 늘 같이 있어 준 존재를 결국 사랑하게 되었다. 어쩌면 무녀가 노린 것이 바로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제게 내밀어주는 손을 사랑하게 되어서 문을 열어 두어도 나가지 못하고 스스로 매여 사는 것.
그러나 첫사랑에 빠진 소년은 대개 무모한 법이다. 히요리는 덜컥 선지자가 되겠노라고 선언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된다면, 그래서 자유로워진다면 유모도 자신을 다르게 봐주지 않을까해서. 더 이상 돌봄받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나란히 서고 싶었고, 나아가 히요리도 그녀를 돌봐주고 싶었다. 가끔 고향의 꿈을 꾸곤 한다는 그녀를 제 손으로 고향에 데려다줄 수 있기를.
고윤을 처음 받고, 이를 사용해본 날을 기억한다. 제가 사랑한 낙람처럼 누군가를 꽃피우는 능력을 마주한 순간을. 그의 가슴께에선 벚꽃과 닮은 복사꽃이 만개했었다. 복사꽃의 꽃말을 알고 있던 히요리는 저와 퍽 잘 어울린다며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선랴향의 모두를 뒤 흔든다. 그러나 히요리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다. 누가 선이고 악이고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다. 히요리의 선은, 정의는, 중심은 태어나 자란 이래로 단 한 사람을 기준으로 삼았으니.
히요리는 오랜만에 사쿠라기에게 서신을 쓸 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아.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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