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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 / 샤오 루

BGM 

 

  ‘최고’와 ‘최선’은 동의어가 아니었으나, 사람들은 자주 혼동하곤 했고 루이시와 그녀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루이시와 가족은 최선의 선택에서 자꾸만 빗나갔다. 잃어버렸던 딸이 돌아온 만큼, 루이시의 부모는 늘 딸에게 최고를 쥐여주려 노력했다. 먹는 것, 입는 것, 가르치는 것……. 가족은 루이시가 본디 가문에서 자랐으면 누렸을 기회들을 쥐여주려 애썼지만, 애당초 루이시는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가족이 그렇다고 말하니 루이시는 억지로라도 필요를 학습해야만 했다. 불평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과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톱니바퀴가 어긋났을 지도 모른다.

 

  루이시는 늘 부모님이 어려웠다. 함께한 시간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그들이 루이시를 어려워하기 때문일까. 한 번 벌어진 시간의 간극이란 좀처럼 메워지질 않아서 결국은 둘 다 손을 놓아버리고선 벌어진 틈새를 기우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당장 결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너를 배신하지 않고, 네게 힘을 실어줄 인연을 곁에 두자는 것이지.”

 

  그 결과가 이거다. 부모님이 제안한 약혼 이야기에 어쭙잖은 반항을 해보았다가 설득 한 마디에 저항을 포기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 방 안의 공기가 더 없이 무거웠다. 그것을 부모님도 눈치챘는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좋은 아이다. 너도 마음에 들어 할 게야. 늘 최고만을 쥐여주셨으니 어련히 공을 들이셨겠지. 루이시는 뾰족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몸을 일으켜 돌아섰다. 방에서 나온 루의 표정이 어두운 것을 보고 오라버니들이 달래려 애썼지만,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만남은 조용히 치러졌다.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보면서 루는 잠시간 친우를 떠올렸다. 혓바닥에 닿았던 텁텁하고도 달콤한 초콜릿의 맛을. 

 

"지루하신 모양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였지요. 잠시…… 생각할게 좀 있어서."

 

  남자의 말에 루는 번뜩 정신을 차려 고개를 숙였다. 암만 이미 모든 건 다 정해져 있고 얼굴만 확인하는 형식적인 자리라 할 지언정, 곧 혼약할 상대인데 그런 상대의 앞에서 한눈을 팔다니 예의가 아니었다. 루가 허리를 숙여 사과하자 남자가 곤란하다는 듯이 웃었다. 책망하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좋은 사람이라더니, 정말 다정한 사람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루는 남자가 더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자신을 만나나 안타깝기도 하였다. 결혼이란 보통 좋아하는 사람과 한 평생을 약속하는 것 아니었던가.

 

"……괜찮으십니까? 저 같은 것과…… 이리 급작스럽게 혼인하게 되어도."

 

  루가 머뭇거리며 묻자 남자는 루를 내려다보았다.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 같은 것이라니. 약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부쩍 다시 물어뜯기 시작한 손끝을 보더니 잠시 허락을 구하고선 붙잡아 치료해주었다. 그가 가진 가문의 능력이겠지.

 

"귀한 분과 혼인을 하게 되어 기쁜 것은 저뿐이었습니까?"

"아뇨, 아. 그게 아니라…… 저도, 저도 이리 근사한 분과 혼인하게 되어 기쁩니다!"

 

  허겁지겁 루가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남자가 웃었다. 그 웃음에 루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루는 늘 빛나고 다정한 사람에 약했다. 빈말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갑작스러운 것은 사실이니 말입니다. 남자는 잠시간 루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달리 마음에 둔 정인이 있으신겁니까?"

"아뇨,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럼 기회를 주시지요. 제게 정을 붙여보세요."

 

  그 말을 하며 남자는 루에게 손을 내밀었다. 붙잡아달라는 듯이. 손해 보지 않으실 겁니다. 우린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뼈가 있는 한 마디에 루가 잠시간 남자를 응시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이 남자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한 걸까. 

  인생에 구김이라곤 없어 보이는 이 사람과 함께 걸으면, 물드는 것은 그일까 자신일까.

  루는 잠시간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그들 사이의 침묵이 민망하게 느껴질 때쯤 손바닥 위에 제 손을 얹었다. 남자는 능숙하게 루의 손가락 사이를 얽었고, 그건 루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헤어지지 않을 관계인데 정이 붙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서.

 

 

  약혼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그들의 관계는 지지부진했다. 남자는 늘 작은 선물과 함께 루를 찾아왔다. 그럼 그들은 차를 마시고, 잠깐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별 다를 것도 없는 루의 이야기엔 늘 귀를 기울여주고 그마저도 화젯거리가 떨어져 루가 입을 다물어버리면, 그제야 입을 열어 능란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문득 루는 왜 이 남자에게 마음을 열 수 없는지 깨닫는다. 남자에게선 루의 부모, 오라버니와 같은 냄새가 났다. 타고나기를 귀족으로 태어나, 생애에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루와는 사고방식이 달라서 같은 언어체계 아래에서도 서로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루가 참을 수 없었던 점은 그들 사이에서 '이해받는 쪽'이 늘 자신이었다는 점이다. 루에겐 '잃어버렸던 시간'이 있었으므로. 정작 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루의 행복했던 시간들은 더없이 불행했던 시기로 부정당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조롱 속에 가두어진 귀하고 소중한 새가 된 기분이었다. 예쁨은 받지만 한 사람의 인격체로는 취급되지 않았다. 늘 루를 '가엾고 사랑스러운 존재'로만 응대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루가 망설이는 이유는 그들이 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루 또한 가족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은 차고 넘쳐서 발작적으로 영에게 편지를 쓰게 만들었다. 왜 하필 영이었냐함은, 그 편지를 받아도 너무 걱정해주지 않을 누군가가 필요했다. 늘 그래왔듯이 조금만 참으면, 이 관계를 무너트리지 않을 수 있다. 루에게 나쁜 일만도 아니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루가 무의식적으로 손톱을 입안에 집어 넣는 모습을 남자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맞이한 약혼식 당일 날에 붉은 혼례복을 곱게 차려입고, 입장하기 직전까지도 루는 말 없이 속을 끓이며 후회하고 있었다. 정작 부모한테는 제대로 말 한마디 꺼내지 못 한 주제에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루의 속도 모르고 창밖은 유난히도 날이 좋았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만개했다. 좋은 날, 좋은 일이다. 그러니 루는 소매로 입을 가리고 애써 울음을 죽였다. 다들 하는……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왜 자신은 이렇게. 붉은 옷의 끝이 물기로 인해 점차 진해졌다.

 

  그리고,

  창이 열렸다.

 

  루가 놀라 고개를 드니 마찬가지로 혼례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그 곳에 서 있었다. 허겁지겁 얼굴을 가리려는 루의 손을 남자가 막아세웠다.

 

"하기 싫으십니까?"

"……."

"노력하였어도 안 되었습니까?"

 

  제게 한 번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그리하시면 제가 어떻게든 방도를 찾아볼 테니. 남자의 상냥한 어조에 루가 결국 와앙 울음을 터트렸다. 하기 싫습니다. 도망가고 싶습니다! 남자는 마침내 용기 낸 루를 끌어안고 다독여주었다. 잘 하셨습니다. 하기 싫은 말에도 용기가 필요한 게지요. 남자는 주머니를 뒤져 얼마간의 여비를 루에게 쥐여주었다.

 

"제가 시선을 끌 테니 그 틈에 일단 며칠간 몸을 피하십시오. 돌아오실 때쯤에는 파혼으로 이야기가 끝맺어져 있을 테니."

"하면 공자께서는,"

"제가 걱정되신다면 모든 게 끝나더라도 서신 한 통 보내주시면 그만입니다."

 

  남자는 루에게 붓을 건넸다. 영력을 쓰라는 의미였다. 루는 망설임을 그만두고, 은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였다. 그리곤 곧장 옷의 끝자락에 날개 익翼자를 적어넣었다. 루의 발이 공중을 박차고 날아오름과 동시에 남자가 소맷자락에서 꺼낸 섬광탄이 온통 세상을 밝혔다. 섬광탄에서 나온 꽃잎이 하늘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붉은 옷의 신부가 하늘을 날아 도망치는 것을 보지 못 하였다.

 

  뒤늦게 신부가 사라졌음을 알고 한 바탕 난리가 났지만, 홀로 남은 남자가 모든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람들을 달랬다. 소란이 잦아들고 모두가 떠나간 뒤에야 남자의 시종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제야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때로는 하기 싫은 말에도 용기가 필요했다고. 다 알면서도 이 혼약을 깨자고 먼저 말을 꺼내기가 그토록 어려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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