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하고 상처입고 질식했다. 나는 그제야 눈앞의 소년을 바로 볼 수 있었다. 결국 이제서야 그 나이대로 보이는 놈을. 기이 할 정도로 꼭 닮아있는 서로가 우스워서, 놈의 상처를 부러 후벼팠다.
-그 아이는 나를 사랑했어.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한 지저귐. 사랑해요, 수줍게 조잘거리던 예쁜 얼굴을 기억한다. 내게 애정만을 요구하던 어린아이에게선 죽어버린 브란도의 향이 났다. 노력하면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순진했던 그 시절. 아이의 마지막을 지킨 건 아이를 죽인 나였다. 예쁜 얼굴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고,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내게 속삭일 수는 있었다. 미안해요. 파들거리는 목소리. 닮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죄하는 가엾은 그 아이를 왜 나는 사랑하지 못했을까. 나를 사랑해 나와 닮아가던 반짝이던 꽃 한 송이. 돌아 봐주지 않아 끝내 시들어 버렸다.
놈은 울지 않았다. 묵묵히 장례식의 한 켠을 지키다가 아이의 뼛가루를 안고서는 고백했다. 담담히 말하는 두 눈이 흩어져버린 누군가를 꼭 닮아서 나는 그 손을 잡았다. 우리는 연인 그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놈에게서 그를 보듯, 놈도 내게서 아이를 보았다.
그러나 죠타로는 내가 카쿄인이 되기를 바랐다. 그에 맞추어 나를 깎아내리려 했다. 요철이 맞지 않는 만남. 두 마리의 고슴도치는 온기와 상처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다. 그것이 내가 이별을 고하는 이유였다. 나는 변화 할 수 없었다. 알고 있잖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 할 수 없어. 이미 심장에, 폐 속에 상대가 가득 차 버려서.
나의 공격을 놈은 오늘도 부인했다.
-사랑이 아니다. 동정이지.
-죠타로, 애새끼처럼 굴지 마라.
나는 문득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내장에 빼곡히 자리 잡은 상처의 진물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요구했다. 헤어지자. 죠타로는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내가 보지 못한, 어쩐지 울기전의 아이와 닮은. 그 순간 눈앞이 번쩍였다. 아릿한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두피가 잡혀 끌려갔다. 부딪혀서 나는 소음이 비어버린 속을 울렸다. 핏물이 입 안 가득 퍼져올 무렵 놈은 조용히 말했다.
-연극을 하자.
부서진 듯한 흉부를 붙잡고 핏물을 내뱉자, 죠타로가 담담히 덧붙였다.
-네놈이 사랑하는 그 남자를 연기하지. 너는 카쿄인을 연기하면 되는거다.
-너 감히 이 DIO에게 버러지들을 흉내내라고 하는거냐?
어이가 없어 반문하지만 죠타로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했다. 다가와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으로 조심스레 내 입가의 핏물을 지워 내었다. 흐트러진 머리를 거칠지만 다정하게 정돈해 주고는 약간의 머뭇거림 후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사랑하자’
그리고 죠타로는 웃었다. 카쿄인이 죽은 이후로 한 번도 웃지 못해서 그 웃음은 뒤틀리고 메말라있었다. 순간 스쳐지나가는 과거의 편린. 기이하게도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내가 사랑했던 단 한사람. 그래, 죠죠는 항상 내게 저렇게 웃어주었지. 기어코 나를 사랑하지 못한 주제에 신사의 가면을 쓰고서는 나를 기만했다. 그에게만은 동정 받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울지 않는 죠타로의 눈가를 쓸어 내렸다. 죽어버린 누군가를 대신하여. 그리고 놈도 내 뒷목을 잡고는.
사랑해요. 어렴풋이 카쿄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도 그런 거죠?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보다 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거죠? 울음 섞인 한탄, 영원한 승리자인 죠나단을 꺾을 수 없어서 꺾여 버린 가엾은 나의 꽃.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에 젖은 너는 그토록 찬란했다. 죠죠에게 매달리던 브란도도 그랬을까?
죽어버린 연인을 갈망하며 서로를 망가트린다. 갈구하는 손길은 비참하고 고통만을 남긴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마침내 서로가 그럴듯하게 망자를 가장하기 때문이다. 이제야 사랑을 한다. 우리는 하나의 길고 무거운 클라이막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