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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憐愛. For.렝]







  처음 눈을 떴을 때, 죠타로는 다만 파멸을 바랐다. 타오르는 태양의 종말을. 부정하고 싶었으나 선연한 감각은 그의 폐부를 찢었다. 카쿄인 노리아키가 죽었다. 이 땅 위에 제일 정의롭고, 상냥할 이가 죽었음에도 이를 조롱하듯 세상은 너무도 찬란하기만 했다. 죠타로는 그저 납득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 남자의 어떤 면모가 친우의 동정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나고 남자와 동거하는 지금까지도 죠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교활하고 추악했으며, 능력이 사라진 지금은 무능하기까지 했다. 관계가 끝나고 죠타로는 고개 돌려 곁의 남자가 잠에 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눈을 감았다. 잠들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우가 죽던 그 밤을, 죠타로는 여즉 꾸고 있었다.

 

  남자는 이따금씩 묻곤 했다. 지금 무슨 생각해? 명확한 해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투영의 잔재. 끝내 떨쳐내지 못한, 미련의 부스러기에 가까웠다. 그러나 죠타로는 이에 성실하게 답했다. 그것이 새롭게 쓰인 둘의 암묵적인 계약이었다. 허울뿐인 눈속임이 비겁함을 안다. 그렇기에 죠타로는 남자가 이것 또한 사랑이라고 말할 때 일축하곤 했다. 허튼소리. 자신은 카쿄인 노리아키를 사랑한다. 명료해지는 진실은 남자와의 시간과 비례하였다. 모순적이게도 남자와 함께 하는 지금에서야, 죠타로는 카쿄인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의 생각, 그의 과거. 그의 비밀마저도. 질시를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명백히 남자를 죽일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죠타로는 남자를 살려두었다. 무력한 그를 죽이는 것보다 친우를 추적하는 것이 더 이로웠다. 체리를 사는 것은 그만두었다. 남자와 견주기에 친우는 너무도 고결했다.

 

  그토록 증오하고 멸시했던 남자였건만. 죠타로는 남자가 숨조차 잃은 채 침대에 스러진 모습이 두려웠다. 미간이 지끈거렸다. 눈을 감았다 떠도 남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천천히 다가가 손가락으로 맥을 재었다. 오롯이 침묵만이 둘을 감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추측조차 힘겨웠다. 처음부터 일그러진 관계였기에 더욱 그랬다. 돌이켜 보아도 어떠한 변수는 없었다. 자신을 배웅하던 남자는 평소처럼 이죽이며 저를 조롱하기 바빴었다. 문득 죠타로는 쓰러진 남자의 손에 들린 회중시계가 신경 쓰였다. 간혹 펼쳐보곤 하던, 망가져 초침이 딸깍거릴 뿐인. 불쑥 화가 치밀었다. 종결을 바란 건 자신뿐이 아니었음을 안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던 남자의 침체, 그러나 죠타로는 용인할 수 없었다. 지지부진한 삶 에서 끝없이 속죄하며 마모되기로, 그날 둘은 합의했다. 그랬기에 지금 남자의 행동은 명백한 도주였다. 죠타로는 남자의 뺨을 때려 묻고 싶었다. 무슨 생각이야? 뇌를 갈라 짓이기고 싶었다. , 조금 눈가가 시큰거렸던 것 같기도 했다. 죠타로가 막 남자의 멱살을 잡았을 때, 실금 같은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일으켜 줘. 미처 방어할 틈새도 없이 벼락같은 손이 죠타로를 끌어당겼다. 요란스레 침대가 비명을 지르고, 회중시계는 바닥을 굴렀다. 죠타로의 몸 위에 올라탄 남자의 간사한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좋은 표정이군, 죠타로.”

    네놈...”

 

  안도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죠타로는 그제야 눈앞의 DIO가 분명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흥미를 저토록 처절하게 갈구해야 하는 가엾은 미물. 그리고 수긍했다. 친우는 분명 DIO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상을 갈망하며, 스스로에게 고독을 선사하니 어찌 과거의 그와 아니 겹쳐볼 수 있으랴. 사랑하는 카쿄인. 죠타로는 그러나 끝내 DIO를 용서할 수는 없었기에 복수를 다짐한다. 저 멀리 아침의 비명이 들렸다. 피를 토해내는 새벽의 광휘가 남자를 훑었다. DIO, 상실로써 소유하는 기묘한 자여. 너는 끝내 나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죠타로는 남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남자를 사랑하고 그 곁에 남아있음으로써 하여금 남자가 영원히 그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죠타로가 미소 짓자, 남자는 표정을 굳히고 날을 세웠다. 지금 무슨 생각해? 죠타로는 대답 대신 남자의 팔을 끌어당겨 다정하게 혀를 섞었다.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은 싸늘하기만 했다. 남자의 공포 어린 눈동자가 사랑스러웠다. 한없이 무서운 클라이맥스. 남자가 비명 질렀다.

 

  먼지 쌓인 고고학 책, 짓물러가는 체리들. 얼룩은 끝내 파고들어 상흔을 새겼다. 어떠한 파괴도, 절망조차도 사랑이라는 그 섬뜩한 두 글자에 묵인되었다. 조금의 무시도, 회피도 허용 받지 못 했다. 치정은 늘 그렇듯 눈물겹다. 메마른 두 사내는 울지 못하니 대신 피를 흘렸다. 물어뜯고, 구타하며, 을렀다. 모두가 기괴하다 손가락질하는 나날들. 지독하게도 그것은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