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희곡을 읊조리며, 제시는 껄렁하게 발을 까딱였다. 그는 악명 높은 데드락 갱단 중에서도 미친놈으로 악명이 높았다. 제시는 선한 이는 아니었으나, 언제나 정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자였다. 데드락이 기꺼웠던 것은 아니나, 자신의 정의를 펼치기에는 썩 편리한 곳이었다. 언젠가 그들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눈앞의 수상하고 시꺼먼 남자는 그에게 구치소에서 평생을 썩고 싶지 않으면, 저를 잡아넣은 떨거지들의 패거리로 합류하라고 말한다. 블랙워치? 좆나 촌스러운 이름인걸. 그러나 제시는 생각보다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말해서는 여느 콜걸보다 탄탄한 그의 엉덩이가 시선을 끌었다. 제시는 빠르게 고민을 끝내고 여자들이 좋아죽었던 미소를 그에게 선사한다.
“나 집 없는데, 그쪽이랑 같이 자는 건가?”
가르칠게 많군. 남자는 제시의 허락에 그를 유치장에 끌어내서 주먹으로 후려쳤다. 알싸하고 짭조름한. 그들의 첫 만남은 분명 번쩍였다.
례예스는 여러모로 제시와 닮은 점이 많았다. 그들은 낮보다는 그림자에 가까웠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거칠고 무딘 제시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쳤다. 암습, 사격, 회피…. 제시가 갱단에서 얻은 나쁜 습관들과 말투를 교정했다. 아니, 거진 새로 창조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제시는 껄렁대면서도 례예스를 졸졸 쫓아다녔기에, 블랙워치의 대원들은 엄마 새와 아기 새라며 자주 놀리고는 했다. 제시는 꼭 한발 더 나아가서 엄마, 젖 주세요. 따위의 말을 했다가 례예스의 주먹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맥크리는 이 촌스러운 이름의 일원들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잡음으로써, 언젠가 ‘정의’라는 미명하에 저질렀던 과거의 죄를 씻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례예스가 이끄는 블랙워치는 특유의 음습함 때문인지, 선한 일을 하고도 경멸받는 일이 잦았다. 철없이 분노하는 제시를 막으며 례예스는 일갈했다.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의 선을 지키면 그만이니까.”
례예스의 나직한 목소리에 제시의 동공이 커졌다. 그것은 긍지였다. 밤 까마귀로 여겼던 남자가 그토록 찬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갱단의 어느 날, 마침내 원하는 것을 갈취했을 때만큼이나 덜컹이는 심장, 몰아치는 엑스터시. 제시 맥크리는 반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곧바로 발정했다. 첫사랑이었다.
***
남자를 따라가야 했을까? 제시는 가끔 남자를 곱씹을 때면 자신에게 묻는다. 례예스는 스스로의 신념마저 버리고 오버워치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영원히 배제당했다. 반란에 가담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 제시는 오버워치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의 뿌리는 례예스였기 때문이다. 원한다면 자신은 그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테지. 허튼소리. 제시는 열차의 지붕에서 시가를 꺼내 물며 조소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은 긍지를 가진 남자였다. 비록 모두에게 비난받을지언정 옳은 일을 행하겠노라 말하던.
“아아, 그래도 그 남자. 상처받은 얼굴이었지.”
‘배은망덕한 애송이’는 그 뒤로 망자의 저주를 받았는지 아침 발기조차 불가능했다. 거, 고자 새끼로 만들 거면 몇 번 더 대주지 그랬수. 제시는 실없이 낄낄대다가 열차 위로 다가오는 헬기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익숙한 움직임이었다. 자신이 가르침 받은 블랙워치의 교본 그대로.
“책임은 결국 내가 질 테니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야겠군.”
제시는 또 한 번, 핑계를 댄다. 그럴싸한 거짓말보단 언제나 욕을 먹을지언정, 진실만을 말하곤 했는데 첫사랑이란 놈은 참 성가셨다. 가면 쓴 씹새끼들을 족치고 남자의 행방을 물을 생각에 찌릿하니 뱃속이 달아올랐다. 그는 분명 저를 잊지 못하고 배신자라고 매도하리라. 제시는 그 언젠가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아, 기억된단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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