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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Dancing in the moonlight. For.렝]

BGM

 
 
 
 
 
 

 

 

  형제, 친구, 라이벌, 파트너. 죠나단과 디오의 관계는 한마디로 응축되기에는 복잡하고 난해한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극점이었고, 극점이었기에 통했다. 디오가 판단하기에 죠나단은 한없이 어설프고 멍청했지만 나름의 고집이 있었다. 그 때문에 죠나단은 혼자 밤을 새우더라도 결코 디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못난 호승심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디오는 죠스타 가문을 삼키기 전까지 상냥함이라는 가면을 써야 했기에 이를 기꺼이 눈감아 주었다. 요컨대, 둘의 관계는 명백한 선이 그어져 있고,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불가침조약이 성립된 상태였다. 디오 브란도는 한 번도 자신이 먼저 이를 침범하리라 상상한 적 없었고, 죠나단이 이를 수용하리란 것은 더욱이 짐작하지 못했다.

 

 

  그들답지 않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디오는 제 또래가 북적거리는 프롬파티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얼뜨기들이 무리 짓는 촌스러운 파티가 맘에 찰 리 없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더 높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죠스타가는 죠나단의 첫 프롬파티 준비에 한마음으로 모여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고, 죠나단조차 어린 하녀에게 춤을 가르침 받겠다고 아침부터 꿍꽝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둔중한 몸이 고작 몇 시간 춤을 배운다고 나아질 리 없었기에 애꿎은 하녀의 발만 몇 번이나 밟고 있던 터였다. 하녀의 앓는 소리와 죠나단의 사과가 몇 번이고 이어졌을까, 작금의 촌극을 견디다 못한 디오가 책을 내려놓고 입을 떼었다.

 

        내가 도와주지. 죠나단. 그러니 하녀는 그만 괴롭히도록 해.”

 

  상냥한 미소였지만 눈빛에는 한심함이, 미간에 잔뜩 자리 잡힌 주름에는 경멸이 배어나와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죠나단의 일에 참견한 적 없었기에, 죠나단은 약간 얼떨떨한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여자역이 필요한 걸.”

 

  디오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치켜 올라갔다. 가볍지만 조금 오만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 죠죠. 이 디오가 못하는 게 있을 것 같아?”

 

  그랬다. 디오 브란도는 재수 없게도 조금 완벽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화려한 외모에 수석이었고, 귀족 가문의 양자였으며 운동도 잘하는 데다가 사교성도 좋았다. 이 모든 것이 백조의 발처럼 피나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겉모습으로는 삼류 로맨스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왕자님이었다. 디오 브란도는 죠나단에게 고갯짓했다. 죠나단이 아둔하게 눈을 꿈뻑거리고만 있자 참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일갈했다. 춤 신청을 해야 할 것 아냐! 그제야 죠나단은 재빨리 디오에게 손을 내밀었고, 디오는 우아하게 손을 얹은 채 그를 리드했다.

 

 

  디오는 생각보다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에게 의문 모를 반감을 품은 죠나단조차도 이를 수긍했다. 그러나 문제는 죠나단이 생각보다 춤에 재능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 시간 동안 꼬박 일곱 번째 발을 밟히자 디오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항상 말끔하던 디오의 구두는 이제 흙먼지로 빛바랜지 오래였다. 운동신경은 나쁘지 않은 죠나단이 이렇게 몸치라는 사실이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디오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벗어. 대번 얼굴을 붉히고 물러서는 죠나단에게 비웃음은 덤이었다. 머저리. 신발을 벗으라고.

 

 

  가지런한 맨발이 잔디밭 위에서 흩날렸다. 까끌까끌해. 천성이 도련님이 죠나단이 조그맣게 볼멘소리를 냈으나, 숙녀의 발을 망가트리는 신사는 없다는 디오의 서슬 퍼런 일갈에 입을 다물었다. 음악 소리가 없으니 대강 디오가 부르는 허밍 소리에 맞춰 둘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았다. 제법 걸음이 익숙해질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춤사위. 저보다 키가 작은 디오의 얼굴을 바라보던 죠나단은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디오는 분명 평균보다 키가 큰 데다 마른 체구도 아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선이 가늘었다. 예쁘장한 외모, 달볕에 부서지는 금발이 찬란했다. 그날따라 선선했던 바람과 찌르르한 벌레 울음, 어쩌면 디오가 흥얼거리는 랩소디가 문제였는지는 모른다. 춤이 끝나자 죠나단은 무심코 디오를 끌어당겨 입 맞췄다. 평소의 그들과는 아주 달랐다.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글쎄. 모네와 고흐의 차이일까. 분명한 것은 일 분 남짓한 입맞춤에는 애정이 어려 있었다. 입을 뗀 죠나단은 제가 저지른 실수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디오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 훌륭한 애프터군.”

 

  그것이 디오가 내비친 반응 전부였다. 입을 닦고 돌아서는 그를 죠나단은 잡지 못했다. 명백한 선이 흐릿해질까 두려웠던 탓이다.

 

  학교에서 열리는 프롬치곤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였다. 저마다 근사하게 빼입고 약속한 파트너와 함께 들어섰다. 죠나단은 이미 에리나에게 살짝 언질을 주었다. 그의 초대신청에 에리나는 얼굴을 붉히고는 몹시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미처 입가에 번진 미소를 숨기지는 못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죠나단은 이마의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잔뜩 젖은 손수건을 들고 돌아오자 계단으로 내려오던 디오가 얼뜨기라며 비웃었으나 그마저도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침내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에리나가 수줍게 얼굴을 가리며 나왔고 죠나단은 만개한 미소를 그녀에게 선사했다.

 

  죠나단과 에리나가 들어서자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다. 정작 죠나단 자신은 눈치 채지 못했으나, 그는 디오만큼은 아니었어도 훤칠한 키와 성실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제법 인기가 있었다. 죠나단과 디오의 파트너가 누가 될지는 또래들의 최고의 관심거리이자 내기요소였다. 레몬 빛 금발을 우아하게 틀어 올리고 어여쁜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에리나를 훑자 남몰래 죠나단을 흠모하던 여학생들이 입을 샐쭉하니 내밀었다. 잔뜩 볼멘 얼굴로 제법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시샘에 가득 찬 목소리로 차라리 그의 형제인 디오 브란도가 더 예쁘다고 종알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디오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잔뜩 문가로 쏠렸다. 그러나 그의 옆자리를 차지한 행운의 여주인공을 만나볼 수는 없었다. 디오는 어떠한 파트너도 없이 혼자 들어섰기 때문이다.

 

  디오가 문가에 기대선 후에야 홀린 듯 그의 입장을 바라보던 모두는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수군대기에는 디오의 차림새라든가 행동이 너무도 우아했기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저마다 다른 화제를 찾아 떠들거나 혹은 디오에게 말을 걸어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드러운 곡조가 시작되고, 죠나단이 에리나에게 첫 춤 신청을 했다. 디오의 매서운 교육 덕분인지 그는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그녀를 리드할 수 있었다. 한 곡의 박자가 끝나갈 때쯤, 죠나단은 벽에 기대서 한 여학생의 춤 신청을 부드럽게 거절하는 디오와 눈이 마주쳤다. 죠나단은 어쩐지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가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샴페인을 든 디오에게 자꾸만 그 밤의 기억이 덧씌워진다. 자꾸만 저를 쳐다보는 죠나단을 눈치챈 디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모양으로 집중하라고 꾸짖었다. 그제야 죠나단은 서둘러 에리나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디오는 샴페인을 마시며 잘 어울리는 한 쌍을 지켜보았다. 에리나의 춤 신청이 이어지고 디오는 천천히 회장을 나섰다.

 

  무도회장 옆, 달빛만이 디오를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묵묵히 신발을 벗어 내렸다. 잔디가 부드럽게 발가락 사이를 파고들자, 조심스럽게 허공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창가에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추어 서서히 박자를 밟았다. 두 번째 곡이 끝나고, 세 번째 곡이 시작할 때까지도 디오는 홀로 춤을 이어나갔다. 마치 진짜 페어가 있는 것처럼 인사도 잊지 않았다. 누구도 그 기이한 춤사위를 보지 못했으나, 설령 보았다 해도 우스꽝스럽다 비웃지 못할 만큼 고결한 춤사위였다. 그 밤의 디오는 분명 상대가 있었다. 제 첫 춤을 준 남자였다. 지난날, 춤이 끝나고 설픈 입맞춤을 선사하던.

디오는 다시 오지 않을 눈부신 청춘과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