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심지어 그녀의 적마저도 파멸을 예기치 못했다. 타라 조노비치는 자신의 불을 통제 못하는 대부분의 불의 마녀들과 달랐고, 그 때문에 명왕에 눈에 들었다. 명왕이 그녀를 총애하는 것에 대해 헬리오스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었으나, 2차 대전쟁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입지를 세웠다. 무자비한 불꽃을 제 맘대로 조종하며 유성을 부르는 그녀의 악명은 지하연합에게 큰 위협으로 각인되었다. 특히 2차 능력자 전쟁을 선두로 이끌며 연합의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루이스에게 완승하면서 연합에게 더욱 주목받게 된다. 이는 지하연합에 소속 된 잉게 나이오비의 한계가 입증되어, ‘재앙’이라는 이명을 받고 출전이 제한 된 것과는 명백히 대조적이었다. 명왕이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회사에서의 위치가 견고했기에, 이제는 그 누구도 그녀에게 도전하지 못하리라 여겼다. 적어도 그녀가 유성을 통제 못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헬리오스의 앞마당에 그녀의 유성이 꼬꾸라졌을 때, 모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로지 타라, 그녀만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급히 회사를 벗어났다. 누구보다 성실한 그녀였기에, 갑작스런 탈주는 의문을 불렀다. 명왕의 개인자금을 빼돌렸다 발각되었을 때도 당황하지 않았던 타라였다. 3일째 결근이 계속 되자 브뤼노는 연락을 위해 전화기를 들었고, 창 밖에 유성우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회사의 간부들이 긴급하게 소집되었다. 타라는 능력의 이상을 느끼고 긴급히 폐허로 몸을 숨겼지만, 워낙 능력이 강력한 지라 그 피해가 컸다. 간부들이 타라의 ‘처분’ 여부를 두고 입씨름을 하고 있을 때, 타라는 지난 전쟁 후로 복구되지 못한 마을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무의식이 더욱 큰 피해를 부를까 두려워하며 잠들지 못했다. 근방 10km가 모두 불바다여서 누구도 감히 접근하지 못했다. 오로지 회사의 인가를 받은 샬럿만이 이따금씩 비구름을 몰고 올 뿐이다. 회의는 지지부진했다.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힘을 포기하느냐, 그녀를 구속하고 최대한 이용하느냐. 헬리오스의 에이스는 어느새 계륵으로 추락해있었다. 워낙 두루 신망 받던 그녀이기에, 타라를 극비리에 사살한다 한들 대외적으로 내세울 명분조차 까다로웠다.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회사의 능력자들은 간부들의 처분에 촉을 세우고 있었다. 길어지는 논쟁 속, 불꽃은 점점 그 범위를 넓혀 타들어만 갔다.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타라는 2차 대전쟁이 끝난 직후 이유모를 열병을 앓았다. 열병은 물음을 몰고 왔다. 의문을 잠식시키려 노력했지만, 차츰 그녀를 좀먹어가는 기이한 병증. 타라는 병의 근원을 알았다. 그녀는 언제나 상냥하되, 선을 긋고.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냉정해야만 했다. 균형을 잃었다간 파국을 부를 테니까. 나이오비가 불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불의 마녀는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 된다. 타라는 누구보다 명료하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비극은 지하연합에서도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타라를 파멸시켜야한다는 주장과 그녀를 동정하며 영입시키자는 의견마저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된 생각은 우선 누군가 그녀의 능력을 저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유성우가 꼬박 한달 째 이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흔하지 않은 장관이라며 마냥 즐거워했지만, 주변 거주민들은 회사의 도움을 받아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각자의 견해가 정리되었을 때, 모두는 무의식적으로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지하연합의 사람들 중, 불의 마녀의 불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는 루이스 밖에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제압할 수 있는 이 역시. 루이스는 시선을 느끼고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연인은 그가 마녀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을 싫어했다. 그도 집착하지 않으려 했지만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한 지금, 그녀에게 생각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침 트리비아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루이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매듭지어야만 했다.
새까만 도시였다. 광염이 모든 것을 감싸, 잿가루만이 가득했다. 루이스가 도시로 진입하는 동안, 몇 개의 유성군을 스쳤다. 아름다운 광경이었으나 분명 잔혹했다. 황폐하나 거대한 도시에서 타라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불꽃이 번진 흔적을 추적하면 그뿐이었다. 도심의 한가운데, 빈 건물 안에서 그녀는 발견됐다. 너무도 웅크리고 있어서, 기묘한 열기가 아니었다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터였다. 루이스는 느릿하게, 그러나 선명한 발소리로 기척을 알렸다. 누군가 도착했음을, 그것도 상대가 그라는 걸 알면서도 타라는 고개 들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바로 지척에 서있을 때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옅은 속삭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스는 그녀가 무엇을 말했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 날 너를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고개 든 타라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작고 약해 보여, 낯설기만 했다. 그는 한 번도 그녀의 이런 모습을 마주할거라고 상상한 적 없었다. 기억 속의 그녀는 언제나 붉고 화려하게 타올랐다. 루이스가 당황하는 사이, 타라는 메마르고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고는 그의 손을 끌어 그녀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뭘 망설이지? 어서 네 잘난 영웅놀이를 마무리 지으라고.
루이스는 그녀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 그녀의 손에 희생 된 연합의 사람들을 기억하려 애썼다. 끊임없을 유성우와, 그로 인해 피해 받을 모두를 떠올리고 싶었다. 하얗게 물들어만 가는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아이러닉하게도 불꽃과 물기, 둘 다였음에.
그는 아직도 트리비아를 사랑했다. 그건 어쩌면 변하지 않을 단 하나의 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누구보다 자신을 필요로 했다. 영웅은 마녀의 머리에 얼음을 꽂는 대신 뜨거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결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손끝이 닿는 곳부터 선명하게 냉기가 파고들었다. 저 멀리, 별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불길은 잦았다. 새벽을 넘기고서는 마침내 누구도 추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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