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Logout Link+ Admin Write

[Commission; 언제나 몇 번이라도 For. 109]

BGM

 

 

  로맨스 판타지의 성립 조건이란 무엇일까.

  용과 마탑, 기사… 북부를 지키는 대공과 황태자. 화려한 데뷔탕트…. 당신이 나열한 이 모든 대답은 아쉽게도 오답이다. 로맨스 판타지란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르다.

 

 

  주창조는 죽은 눈으로 테라스에 서 있다가 커튼을 펼쳐 몸을 숨겼다. 아직 피로연은 끝나지 않았고, 혹여나 누군가 자신을 발견할까 두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하게 익숙한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때 사랑했던, 아니 실은 아직도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다. 코끝이 찡 아려오고 창조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창조는 귀가 좋은 저 남자가 흐느낌을 듣기라도 할까 봐 입안을 깨물며 참았다.

  이 순간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왔다. 사랑하는 남자가 낯선 여자와 결혼하길 바란다니 바보 같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젠 그가 자신의 연인이었던 순간이 오히려 백일몽처럼 느껴졌다.

 

  어서 지나가 줘.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견디면 이 모든 슬픔에도 마침표가 찍히니까.

 

  오늘의 주인공인 부부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져 완전히 들리지 않게 되자, 마침내 창조의 몸이 천천히 무너졌다.

 

“콜록, 컥, 흐억, 억, 흑, 끄윽”

 

  긴장해 참고 있던 숨이 뒤늦게 터져 나와 몇 번이고 기침했다. 눈물과 콧물, 침이 지저분하게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그때, 커튼이 걷혔다. 아직 연극이 끝나기 전인데.

 

“…왜 울어요.”

“가, 제발.”

 

  창조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진이 빠져 비명을 지르지도 못했다. 결혼을 했으면 이제 아내가 된 그녀와 행복하게 살기나 할 것이지 기어코 돌아온 이 남자가 미웠다.

 

“제발… 제발…! 나 같은 거 신경 좀 쓰지 마….”

“이렇게 우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남자의 손이 조심스럽게 창조의 턱이며 뺨을 쥐었다. 지저분하고 축축할 텐데 아랑곳 않는 눈치였다. 결국 마지못해 창조가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남자의 엄지가 붉게 짓무르고 부은 눈가를 쓸어주었다. 그 손길에 창조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부드러운 입술이 창조의 달뜬 호흡을 훔쳐냈다. 아. 어지러이 세계가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눈 뜨면 모든 것이 제 자리일 것이다. 창조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에야말로 그가 자신을 발견하지 않게 해주세요. 창조 자신은도무지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방법따윈 모르겠으므로.

 

 

  주창조가 세키가하라 슌이 남자 주인공인 로맨스판타지에 빙의했으나, 기어코 서로 사랑에 빠져 결말에 닿지 못한 지 꼬박 8만 4천 번째 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