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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그리하여, 절정이다. For.렝]

늘 마감하는 사람 2016. 3. 21. 00:53

BGM

 
 

 

        흐음. 소원을 말하면 웃지 않는다고 약속해 줄 수 있어?

        물론이지! 안 웃을게!

        언젠가, 우리가 묻혀있는 이 산을 올라가 보고 싶어. 하늘 아래 서서, 모든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게 내 소원이야.

        킥킥

        ! 너 안 웃겠다고 했잖아!

        미안, 너무 우스워서. 그거 내 소원이기도 해.

 

  소년과 소녀는 노오란 프리지어가 가득 피어있는 꽃밭에 누워서 종알댔다. 바람이 가볍게 둘의 공백을 스치고, 몰래 잠든 소녀의 손을 잡는 소년의 눈이 온통 사랑으로 빛났다.

 

 

***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플라위는 태어난 그 순간, 처음에는 지독하게 한기가 들었다. 분명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다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뿌리박힌 채로, 몇 번이고 구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한참을 불러도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울다 지친 그는 아득하게 먼 모든 것을 멍하니 곱씹었다. 무엇인가 생각은 나지만,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건조하게 세상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다시 눈물이 흘렀을 때 왕이 찾아왔다. 왕은 더 이상 눈물 흘리지 못하는 플라위를 대신해 한참을 울었다. , . 다 괜찮아질 거란다. 왕은 그를 데려가 모든 노력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는 사랑을 잃었다. 플라위는 절박했고, 더는 기다릴 수 없었기에 집을 뛰쳐나와 폐허로 향했다. 그러나 여자조차도 그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낙담했고, 자살을 꿈꿨다. 네가 없는 세상에선.

 

  흔들리는 황매화 빛 프리지어들 사이로 흔들리던 플라위는 문득 자신이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졌음을 알아챘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또 불러오는 일. 의지만 있다면 그는 몇 번이고 되살아 날 수 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 줄 알아? 왜냐하면 네가 특별해서야.

  플라위는 불현듯, 지독하게 머리가 아파왔다. 자신이 무엇이었는지 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픔도 배신감도, 기쁨도 플라위에겐 이해할 수 없는 찰나의 추상에 불과했다. 그는 습관처럼 남을 돕기 시작했다. 모두의 친구가 되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흥미를 잃었다. 플라위는 그 날,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모든 게임에서 이기고, 모든 게임에서 졌다. 모두를 살리고, 모두를 죽이는 온갖 경우의 수를 경험하고 나서야 플라위는 아이를 만났다. 그리고 실패했다. 자신을 벗어나 나아가는 아이를 보면서 플라위는 처음으로 그리움에 잠겼다. 차라. 아주 오래전에 잊어버린 이름이었다. 차라, 지하실에 잠든 차라. 어떻게 돌아 온 거야? 플라위는 점점 선명해졌다. 차라, 차라. 이렇게 끝낼 준비가 안 됐어. 널 떠나보낼 준비가 안 됐어. 그녀가 죽었을 때 과거의 자신은 목 놓아 울었다. 플라위는 아이에게, 아니 어쩌면 그 너머에게 물었다.

 

 내가 널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

 

 

너 같은 아이와 헤어질 준비가 안 됐어.

  훌쩍 자랐지만, 여전히 어리숙한 소년은 그렇게 우짖었다.

 

 

***

 

  플라위는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진 않았지만, 뜻 모를 당위성이 그를 이끈다. 플라위는 누군가를 속일 때 그래 왔던 것처럼, 아이에게 달콤한 말을 속삭였다.

 

        난 모든 것에 질렸어. 우리가 시작한 걸 끝내자.”

 

  일이 끝나면 아이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플라위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언젠가 그들이 꽃밭에서 한 약속을 지킬 참이었다. 함께라면, 지상에서 살아가는 것도 행복하지 않을까. 6개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플라위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이는 미묘한 얼굴이었다. 플라위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전에도 말했겠지만, 어느 때나 내내 넌 여전히 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야.”

 

  갑자기 플라위는 눈물과 함께 두려움이 차올랐다. 만약 아니라면 어쩌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망상이라면, 차라는 돌아오지 못하고 지상에서 숨이 끊어졌다면 어쩌지.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증거다. 이렇게 강렬하게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잃어버렸던 사랑밖에 없을 테니. 천천히 다가오는 아이를 보면서 아스리엘은 덜덜 떨며, 중얼거렸다.

  차라. 너무 외로웠어. 너무무서웠어.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