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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한다면 사살, 질 것 같으면 자살 / 사라카엘 블러드굿

BGM

 

Chapter.1

그 이름, 사라카엘.

 

  그러니까, 일단 말해둘게. 우리 집은 원래 음침해. 좆나 웃기지도 않은 팀버튼 표 뱀파이어 가족 시트콤 같은 게 우리 집이라고. 누가봐도 아이비리그 교수인 아버지와 그루피같은 우리 엄마가 대체 어떻게 결혼한 건진 모르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사라카엘 블러드굿이란 웃기지도 않은 이름을 딸내미에게 골라줬단 말이지. , Husakeru! 생각할수록 열받아. 누구한테 내 이름을 말하면 멍청한 얼굴로 되묻는단 말이야. 그리곤 진짜냐고 묻지. 씨발 그럼 당연히 진짜지. 누가 예명을 사라카엘같은 걸로 지어?

 

  아니, 그렇잖아. 안 그래도 수상하게 생긴 부부가 수상하게 생긴 집구석에서 수상하게 딸내미를 키우는데, 난 씨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보통의 가정이란게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몰랐단 말이지. 또래 아이들과 아주 조금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고.

반 애들이 다 아는 걸 나 혼자 모르는 그 기분을 알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며 웃을 때 어쩔 줄 모르겠는 더러운 기분 말야.

 

  나는 애들이 듣는 노래도 모르고, 애들이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모르고, 최신 유행 그딴 건 알 리가 없고. 심지어 친구들과 연락할 휴대폰도 없었지.

  Demo, 나 노력했어. 어떻게든 친구를 갖고 싶었지. 집에 있는 인형도 가져갔다고. 저주받은 인형이라며 울면서 내 얼굴에 집어던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튼 시도는 했어.

  근데 좀 재수가 없었나 봐. 이건 내가 자아가 있을 때부터 한 평생 들은 소리기도 한데……. 왜냐면 우리 엄마랑 나랑 둘 다 좀 재수가 없게 생겼으니까. 500년 정도 전에 태어났으면 꼼짝 없이 마녀로 몰려서 화형당할 그런 인상이긴 하지.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었다고. 친해지고 싶어서 모두에게 나눠준 과자가, 모두에게 식중독을 부를줄 누가 알았겠어? 그건 그 과자를 판 제과점 탓이라고. 나도 먹었는데 멀쩡했단 말이야.

  아이들이 단체로 쓰러졌으니까 부모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고, 우린 제과점 탓을 했고, 제과점은 되려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소송을 걸어왔고…… 이와중에 일 때문에 뉴욕에서 지내던 아빠는 엄마에게 이혼서류를 통보했지. 이혼서류와 함께 우릴 위해 존나 비싼 변호사를 고용해줬지만, Kuso. 그때 우리한테 필요한 건 변호사가 아니라 가족이었어. 아빠였다고.

  소송에서 이겨서 모두를 식중독에 빠트린 게 우리 탓이 아니란게 명명백백히 밝혀졌지만, 누가 그걸 신경쓰겠어? 우린 그냥 존나 비싼 변호사로 처벌을 피해간 뻔뻔한 집구석이 됐어. 내 학교생활은 당연히 좆됐지.

 

  난 공공의 적이 됐어.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았고, 선생조차 나를 꺼려했지. 단순히 아이들만 나를 싫어한 게 아니라, 학부모들도 날 싫어했으니까.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는 걸 넘어서 일부러 발을 걸거나 어깨를 치고 가기도 했어. 식당에선 먹다 남은 잔반을 내게 던지는게 일종의 의식이었다니까.

  사춘기였던 내가 겪은 사건들을 봐. 따돌림, 폭력, 이혼. 미치기 딱 좋은 환경이었지. 집에서라도 위로받고 싶은데 엄마는 늘 바빴어. 아빠와 이혼했으니 이제 다시 일을 해야 했거든. 아빠가 위자료와 양육비를 모자라게 준 것도 아닌데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미치기 직전이라 일이라도 했어야 버틸 수 있었나 봐.

 

  내가 등교거부를 하고 방에 틀어 박혀 있어도 아무도 신경 안 썼지. 엄마는 나를 존중해줬어. 존중인지 방치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내가 학교가기 싫다고 하자 그걸 허락해줬으니까.

  …아무것도 안하니까 하루가 정말 길더라. 그래도 난 계속 기다렸어. 누구 한 명은 내 방문을 두드려줄 거라고 굳게 믿었지.

  왜 걔네들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선 그러드만. 내게 상처준 걸 사과하고, 하하호호 화해하고, 다시 친구가 되고……. 나한테 그딴 평범한 이야기를 알려준 건 분명 걔네들이었단 말이지. 근데 왜!

  내가 정말 울고 싶었던 건. 내가 방 밖에 안 나가니까 정말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단 거야. 난 솔직히 한 명은 내 근황을 궁금해올 줄 알았어. 안부를 묻진 않아도…….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사라카엘은 그 방 안에서 고독사하고 말았어.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인가?

아무도 안타까워해주지 않았어.

이게 사실이야.

이게 현실이고 말이지.

 

 

 

Chapter.2

인생이 신맛을 준다면 더 맵게 갖다 돌려줘라.

 

  멍청하고 음침한 사라카엘이 죽고나서 그 방에선 아주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누가 뒀는지 모를 영화 한 편, 아니 굳이 따지자면 두 편 때문이었다.

  킬 빌. 노란색 쫄쫄이를 입은 금발 여자가 일본도를 들고 어설픈 일본어를 지껄여대며 다 썰어대는 그 영화. 그 영화가 방 안의 시체를 사로잡았다.

  영화 속에서 여자주인공은 무적이 아니었다. 시작하자마자 죽고, 두드려 맞고, 피 흘리고, 또 산채로 파묻혔다. 하지만 결국, 또 결국에는 일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끝마쳤다. 히카리는 그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그냥 잘 때도 틀어놨다. 자다 깨면 녹엽정에서 결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고 유바리짱은 철퇴를 휘두르다 키도에게 죽곤 했다.

  몇 분 몇 초에 어떤 장면이 나오는 지 완벽히 외우게 된 그 순간이었다. 머리에 샷 한 발 맞고 죽기 직전까지 갔다 살아난 베아트릭스 키도처럼, 사라도 다시 살아났다.

  ‘히카리.

 

  왜 뜬금없이 히카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절대 헷갈리지 않을 페르소나가 필요했다고 말 할 수밖에.

  어두침침한 사라카엘과는 완벽히 다른 자아.

  그래서 빛인 히카리로 지은 거야.

 

  베아트릭스 키도처럼 복수하기 위해선, ‘히카리도 그녀만의 핫토리 한조를 찾아야만 했다. 100일 째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자, 그녀의 엄마인 살로메 블러드굿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는 건 상관없어.”

 

  그녀는 덥수룩한 히카리의 앞머리를 확 젖혔다. 비록, 머리색은 아빠를 닮아 갈색이지만, 히카리의 두 눈은 엄마를 꼭 닮아 있었다. 뱀과 같은, 사악한 녹색이 푸르게 타올랐다.

 

  “뺨을 한 대 맞음, 목을 뽑고 와.”

 

그리고 히카리가 원하는 대로 검을 구해다주었다. 비록 날은 없지만, 정말 쇳덩이라서 무게가 꽤 나가는 검이었다. 히카리는 그 검의 이름을 고고 유바리로 지었다. 왜 키도의 적이었던 고고 유바리 지었냐고 묻는다면, 제 또래였고, 귀여웠으니까. 그런데도 겁내지 않는 킬러였으니까. 오렌 이시이를 충직하게 보좌하기도 했고.

  타고나기를 배짝 마른데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히카리가 그 검을 제대로 휘두르기까지는 또 100일이 소모되었다. 힘을 기르는 동안, ‘히카리는 사라카엘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외모를 다듬었다. 머리를 시커멓게 염색하고, 진하게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독특한 옷을 사입고, 기다란 부츠를 신었다. 일본어도 배웠다. ‘히카리니까.

 

  뒤늦게 아빠에게서 편지가 왔다. 사라카엘이 원한다면, 뉴욕으로 건너와 새로 시작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그 애는 이미 죽었으므로 답신조차 보내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 히카리는 고고 유바리를 들고 휘파람을 불며 학교로 향했다. 당연히 Twisted nerve의 그 음조였다.

 

Chapter.3

그런 내 가슴을 찢어놓고도 대가가 따르지 않을거라 믿었나?

 

  학교엔 때 아닌 피바람이 불었다. 누군 코뼈가 부러지고, 누군 이빨이 나가고, 멍은 물론이요, 심한 경우에는 살점이 뜯긴 아이도 있었다. 비명이 난무했다. 아마추어 감독이 찍은 실험영화같기도 했다.

단 한 명이 벌인 일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저 아직 이 학교 학생인데요? 검색하시면 나올걸요.

학생이 학교를 가는걸 막으시는 건가요?

 

  첫째, 그 때까지만해도 사라카엘의 학적이 남아있었다. 어디까지나, ‘등교거부중이었으니까. 그래서 경비는 사라카엘을 제지할 수 없었다.

 

-기존의 사건과 달리 애초에 총기류가 아니라 테러라고 보기엔 애매합니다. 외부인이 침입한 것도 아니구요.

발포했다간 과잉대응으로 일이 커질 수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둘째, 사라카엘이 기타케이스에 숨겨서 반입한 것은 총기류가 아닐 뿐더러, 날이 없는 둔기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이를 대응할 마땅한 프로토콜이 없었다. 심지어 상대는 어렸고, 여자애였기에 총을 발포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대응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었기에.

 

-, 얘 봐라? 꼴에 장난감도 검이라고 들고 왔네.

진짜 지랄도 가지가지로 해요, 씨발.

-덤벼.

 

  셋째, 사라카엘을 주동해서 괴롭힌 아이들은 그녀를 명백히 얕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손에 일본도를 들고 휘두르기 직전까지도. 그래서 제 때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그녀에게 주먹을 휘둘러 해결하려고 했고 실제로 사라카엘도 꽤 중상을 입었다. 하지만 똑같이 아마추어라면, 더 절박한 쪽이 승산이 있는 법이다. 사라카엘은 오늘 지면 옥상에서 떨어지든, 차에 치이든 아무튼 죽어버릴거라는 마음가짐으로 달려들었다.

  결과적으로 일 대 다수. 사라카엘 쪽이 열세였기에 먼저 공격한 것이 그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가 성립되기 애매해졌다.

 

-문 잠갔어?

-저러다 진짜 죽으면 어떡해?

-쟤는 복수할 자격이 있잖아.

 

  넷째, 방관자들은 사라카엘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번에도 방관했다. 어떤 아이들은 선생과 경비가 제때 진입하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고 방관했다.

 

  재판이 벌어졌다. 한 때 모녀의 무죄를 입증한 변호사들이 다시 참석했다. 집안을 틀어박혔을 때 받았던 정신감정 기록들과, 일 대 다수로 싸우느라 만신창이가 된 몸의 진단서가 휘날렸다. 변호사들은 배심 재판을 요구했다. 방관자들은 증인이 되었고, 이야기는 적당히 흥미롭고 안쓰럽게각색되었다.

  모든 정황이 히카리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히카리가 복수하고자 노렸던 크레이지 44는 몸 한 구석에 영원히 남을 흉터가 생겼다. 그 흉터가 만져질 때마다 그날의 광기를 떠올리고 두려워하게 되겠지.

  크레이지 44가 그 날의 악몽을 꾸며 잠 못 이룰 때, 히카리는 킬 빌을 보며 카라멜 팝콘을 먹었다. 킬 빌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복수란 차가울 때 가장 맛있는 음식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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